가볼만한곳 North Kaibab Trail

North Kaibab Trail

전례 없는 감염병 사태로 전 세계가 멈춰서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여전히 계절은 지나간다.
올해는 봄과 여름이 언제 왔다갔는지 모르겠다.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Covid-19가 사회 각 부분에 많은 불편과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데 자영업자도, 직장인도, 학생도, 전업주부도, 어린 아이도 모두가 정말 힘든 때이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정신적으로 지칠 때 에너지 충전과 기분전환을 위해 여행이라는 선택이 있었는데 지금은 Covid-19 때문에 여행도 가기 힘들게 된 상황이라 조금 서글프기도 했다.
요즘 사람들은 여행을 가지 못하는 대신 virtual travel를 즐긴다고 한다.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이 ‘집콕’생활을 하면서 다들 뭐하나 봤더니 상상 속에서 여행계획을 세우고 있는 현상이 새로운 트랜드로 떠오르고 있다.
가고 싶은 곳을 구글 맵으로 찾아보고 자연경관과 길거리뷰 등을 샅샅이 훑어보는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포스트들이 인기라고 한다.
가상 여행에서는 Covid-19도, 사회적 거리두기도 없기 때문에 떠나지는 못하지만 가상으로 계획한 여행지가 여러 곳이 되었다.
여행을 엄두도 못 내고 계획만 세우다가 친구가 얼마 전 콜로라도와 유타에 다녀왔다고 했다. 여행 매니아인 친구가 집콕 생활만 하다가 드디어 탈출(?)한 것이다.
우리도 용기를 내어 자이언 국립공원 하이킹 코스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Observation Point는 큰 바위가 떨어져서 닫았고, Narrows와 Subway는 강물이 박테리아에 오염되어서 닫았다. 엔젤스랜딩은 코비드19 때문에 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전에 다녀왔던 곳이라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남편이 그랜드 캐년 노스림 쪽을 알아보았다. 다행이도 하이킹 코스가 오픈되어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어 오랜만에 그곳으로 여행계획을 세웠다.
요즘 상황에서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서 나름대로 준비를 철저히 했다. 우선 숙소를 정할 때 이곳저곳에서 떠돌아다니지 않고 한곳에 머물러 동선을 줄이기로 계획했다.
Kanap이라는 곳에 숙소를 정했는데 애리조나의 그랜드캐년 노스림과 유타 자이언 캐년 두 곳을 갈 수 있는 중간 지점이라 좋았다.
전에는 숙소를 정할 때 편리한 지역을 선호했다면 이제는 사람이 붐비지 않는 지역에 깨끗한 시설과 방역 수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래서 프렌차이즈 호텔이 안전할 것 같아 정했는데 그래도 찝찝해서 베개, 이불, 타월 등을 따로 준비해 갔다. 마치 피난을 가는 사람처럼 짐을 싸가지고 호텔방으로 들어섰는데 방역과 함께 48시간 비워두었다는 표시가 있는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어 마음이 조금 안심이 되었다.
호텔 직원들은 친절했지만 긴장된 모습으로 마스크와 페이스 쉴드까지 하고 손님을 맞이하고 프론트에 손세정제 비치와 보호가드 등 설치했는데 요즘 시기에 호텔도 운영하기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마스크로 완정 무장한 투숙객들도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지 않은 등 거리두기도 하고, 모두가 긴장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행지가 아니라 마치 전쟁터에서처럼 긴장된 모습으로 코로나와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도착 당일부터 호텔에서 긴장감과 찝찝함 때문에 잠도 깊게 들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여행이 아닌 고생으로 이어질 것 같아 걱정도 되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 5시 예정대로 그랜드캐년 North Rim으로 향했다. 잠이 덜 깬 눈으로 밖을 바라보니 새벽달이 넓은 하늘에 걸쳐 있었다.
간밤에 왜 잠을 설쳤나 생각해보니 기대심이 너무 감당하기 벅차서 잠이 안 왔나 보다.
노스림은 일 년 중 절반만 관광이 가능하고 라스베가스에서 출발하는 상업투어들이 대부분 사우스림에 집중되어있어 노스림의 관광객이 훨씬 적다고 한다. South Rim에 가면 세계적인 관광지에 와있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North Rim에 가면 대자연의 한가운데 내가 서있구나… 라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사우스림에는 어딜 가든 주변에 관광객이 있지만 노스림에서는 아무도 없는, 바람소리만 나는 협곡 가장자리에 서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연에 빠져들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다.
초반에는 황량한 사막의 모습이나 애리조나, 유타에 접어들며 다양한 경치를 볼 수 있고 Kaibab National Forest에 접어들면서 부터는 이전까지 보아오던 사막의 경치와는 또 다른 침엽수로 둘러싸인 숲을 보며 달리다가 AZ-67에 접어 들어서는 산불에 타버린 숲이 다시 재생되고 있는 모습,
Aspen 나무들과 중간에 나오는 넓은 초원에서 사슴, 야생 칠면조, 바이슨 등 야생동물들도 볼 수 있었다, 그랜드캐년 노스림은 기대하지 않고 가면 더욱 감동받을 수 있는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 같았다.
하이킹 트레일 입구에 도착해서 차에 내렸는데, 요즘같이 북적이는 곳을 피하는 시기에 적합한 고독하고 조용한 노스림이 전에 왔던 분위기보다 썰렁해 보였다.
안내 센터도 문을 닫고 오래전 노스림에서 인상 깊은 맛의 디너를 즐겼던 식당도 문을 닫았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보이는 풍경보다 험하지 않았는데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새벽의 쌀쌀함을 느꼈는데 산은 탁 트여있으니까 훨씬 안전할 것 같아서 그런지 트레일에는 생각보다 하이킹을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자주 보였다. 하이킹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면 마스크를 하거나 옆으로 비켜가면서 거리두기를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 시대에 등산이나 아웃도어를 즐기는 이들의 철학에도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많은 과학자들은 코로나19 출현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연환경의 파괴’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고 자연을 대하는 자세를 바꿔야 할 것 같다.
산행하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자연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는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로 이미 우리의 삶에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그랜드캐년 계곡 아래를 끝없이 내려가면서 중간 중간 주변 풍경을 바라볼 때가 있었는데 그곳에 풍경은 웅장하고 깊어보였는데 너무 놀랄 수밖에 없는 웅장함은 너무 거대하여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웅장함에도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대자연을 대하는 경이로움은 숙연함의 감동을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런 그랜드 캐년 협곡이 마치 사람을 압도적으로 대하는 도도함으로 보였어도 그것에 대응할 수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험한 산중에 잠시 쉼을 갖고 또다시 산 아래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내려갔다. 가는 도중 노새나 말을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도 만나고 어린자녀들과 함께 가는 사람들, 노부부, 젊은 커플들…산에서 마스크를 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묵묵히 자연을 만끽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노스림은 10월 말경부터 폐쇄하는데 눈이 많이 내리고 춥다고 한다. 하루 종일 거대함과 웅장함으로 보이는 황홀한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 기분이 코로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듯했다.
쾌청한 하늘이 이른 아침에 쌀쌀함은 사라지고 따사로움으로 시작해서 시간이 흐를수록 따거운 햇살로 변했다.
땀에 흠뻑 젖어 마스크를 끼고 숨을 가쁘게 쉬면서 인근에 짧은 터널를 지나면 목적지가 보일 것이라고 한다.
여행을 다시 하기 위해 평소에 집에서 운동을 해왔는데 운동을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산행을 할 때 힘이 빠질 때 항상 다짐 하게 되는데 이번 트레일은 만만치 않은 코스인 것이 실감났다.
이 트레일은 그랜드캐년 노스림에서 사우스림까지 연결된 유일한 트레일인데 목적지인 까마득하게 멀리 보이는 다리를 언제 건널 수 있을까 했는데 주변 풍경을 즐기며 천천히 쉬엄쉬엄 내려갔다.
영국의 BBC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 가볼만한 곳 중 그랜드캐년! 그 이유를 다시 뒤집어 생각해보면 살아 있을 때 다녀오란 뜻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벅찬 강동이 배가되는 트레일 하이킹을 직접 걸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노스림에서 사우스림까지 Rim to Rim을 종주하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체력을 더 키워 다시 가볼만한 곳으로 남았다.
트레킹을 직접 해보니 트레킹을 하면서 얻는 풍경에 대한 감흥을 느낄 수 있었는데 드디어 다리를 건너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사진으로는 멋진 전경이 표현이 안 되지만 거대한 암벽을 직접 감상하고 까마득한 오름길을 걸어야했다. 내리막길은 그래도 해볼 만 했지만 2800피트 가파른 산을 끝없이 오르는 것이 정말 더 힘들었다.
도착해서 차를 세워둔 곳까지 오르면서 온 힘이 빠졌지만 그래도 미완성 트레킹을 해냈다는 뿌듯함이 그동안 쌓인 삶의 찌꺼기를 모두 없애준 듯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날은 잠도 깊이 잘 자고 다음날도 거뜬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다음날에는 휴식을 취할 겸 자이언캐년 쪽으로 향했는데 가는 길에 오래전에 잠깐 들렀던 코랄샌드라는 사막 지역을 방문했다.
코랄샌드에 도착하니 젊은이들이 샌드보드와 둔버기를 타고 환성을 지르며 놀고 있었다. 그들처럼 즐기지는 못했지만 코랄 빛 모래 언덕에 오르며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고 모래 위를 걷는 기분을 만끽하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때 도착한 자이언캐년은 오래전 모습과 다르게 개발이 많이 되 보였다. 마치 세도나 리조트 느낌이랄까 사람들이 많았지만 자이언 캐년의 붉은 산은 그대로 아름다운 자태를 보였다.
물이 흐르는 피크닉 공원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먹고 나무 그늘 벤치에 누워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보니 행복했다. 예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는데 코로나 이전 시대가 더욱 그리워졌다.
예전에 방문했던 작은 피크닉 공원 옆에 흐르는 Virgin River에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했었는데 이곳에 수질이 박테리아에 오염돼서 물놀이를 금지하고 있다는데 흐르는 물소리가 왠지 처량하게 들렸다.
자이언캐년 국립공원은 오픈한 상태라 셔틀버스는 예약제로 운행되었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주로 드라이브만 하며 눈으로 바라보는 풍경을 즐기고 돌아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여행을 다녀와 보니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너무 신경 쓰이는 일들이 많았고 여행의 즐거움이 반감된 기분으로 다녔다. 하지만 언젠가는 익숙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시대에 맞는 조금이라도 안전한 여행이 될 수 있는 방안들이 나오리라 기대해 본다. 그래도 걱정이 많아진다면, 당분간 가상 여행놀이에 만족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글 : 유니스 홍, 사진 : 브라이언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