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만한곳 Havasupai

Havasupai

끝을 알 수 없는 Covid-19 사태가 생각 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 이번 달은 조금 잠잠해지지 않을까했는데 상황이 더욱 나빠져 섣부른 기대감으로 예약했던 캠프사이트를 취소하면서 다시 여행을 떠나지 못해 실망을 안겨주었다. 요즘은 어떤 변화가 엄습할지 모르는 상황으로 불확실성 속에서 오는 부담감이 불안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각종 미디어에서 전하는 위기의 시대에서 생각을 전환해야 하는 것은 다른 때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새로운 지혜가 필요한 이유인 것 같다. 요즘 들어 살아가는 이유와 의미를 스스로 물어보면서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나에게 돌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찾아보면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선물로 주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내가 하면 기쁜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거기에 몰입하고 몰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연락이 끊겼던 지인이나 친구에게 안부를 전하거나 미뤄뒀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감성적 공감과 소통을 통해 더욱 따뜻한 정감이 오고 가는 행복한 인간관계를 가꾸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 늦기 전에 연락을 먼저 해보았다. 요즘은 가끔 친구들과 영상 App으로 서로간의 안부를 전하고 세미나나 모임을 영상 App으로 하곤 한다. 처음에는 비 대면으로 하는 영상이 너무나 어색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짐이 신기할 정도이다.
Covid-19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좋아하는 일에 몰입을 넘어 흠뻑 빠져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외로운 시간의 연속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지난 몇 개월은 그저 물리적으로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나에게 의미심장한 보람과 가치를 제공해준 또 다른 시간이었다. 거리두기를 유지하되 더욱 살가운 인간적 관계는 다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사연과 배경을 염두에 두고 배려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다.
지난달에 이어 2012년 다녀왔던 수파이 마을 사진을 보면서 지난날의 그리움과 추억이 마음의 위로를 갖게 해 주었다.

Havasupai 2012

아름다운 폭포 3곳을 구경하고 숙소가 있는 마을로 향했다.
무리한 강행군으로 걷기가 힘들어 천천히 쉬어가며 마을로 향하는데 말없는 친구가 함께 길 안내를 해주었다.
수파이 마을에서 곳곳에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개들 중 한 마리가 가는 길을 앞서가며 함께 걸어가 주었다. 처음에는 우연히 마주친 개이거니 하고 무시하고 걷는데 뒤로 힐끔 힐끔 쳐다보며 우리가 제대로 오는지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걷고 있었다. 쉬어가면 같이 쉬고 다시 걸으면 함께 걸으며 마치 친구처럼 동행해주었다.
함께 동행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로 군것질거리를 조금 주었는데 바깥세상에 개들과 달리 먹는 것 앞에서 달려들지 않고 이리저리 살펴본 후 품위(?)있게 조금씩 먹었다.
어제 그랜드캐년 계곡 아래로 내려올 때도 수파이 동네 개들을 볼 수 있었는데 올라가고 내려오는 Caravan처럼 말을 탄 수파이 부족 인디언과 짐을 실어 나르는 노새들 행렬에서 꼭, 개가 앞뒤에서 말을 호위해서 다니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
마부와 말이 쉬어가는 시간이면 호위하던 개들도 함께 쉬어가기도 하는데 고단한 삶을 사는 개 팔자(?)처럼 보이긴 하지만 노새무리를 호위하는 견(犬)공들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흠뻑 받고 자란 것 같았다. 대부분 살이 오른 모습으로 도시의 애완견처럼 잘생기진 않았지만 눈치 빠르고 점잖은 녀석들이다. 그들은 잠시 틈만 나면 쉬다가 사람들과 노새들이 움직이면 곧 자기 임무로 되돌아간다.
우리와 함께 가던 개도 영리해보였는데, 사람을 잘 따르고 카메라를 들이 대거나 가까이 다가가도 성가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수파이 마을에 처음 도착 했을 때 인상적인 장면 중에 하나가 평화스런 전원풍경과 어울리게 노새들이 울타리 없이 혼자서 밖에 나와 돌아다니고 개와 고양이들도 자유롭게 다니는 풍경이 마치 이곳이 지상낙원처럼 느껴졌다. 이곳에서 동물들은 묶여 있거나 사나운 모습을 하지 않았고 사람들도 너무나 순하고 동물들과 함께 가족처럼 사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동물가족들은 모두가 제집이 있었다. 저녁이 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런지 밤에 마을을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동물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이곳 동물 중 특히 개들은 마을을 지켜주기도 하는데 개들 때문에 마을에는 야생동물들이 내려오지 못한다고 한다.
낮선 개와 함께 걸으면서 어느덧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가 보였다.
어제 마을에 도착하면서 본 마을 전경 중 이곳의 랜드마크처럼 돌산위에 우뚝서있는 두개의 촛대처럼 보이는 수파이 마을의 Wii’igliva~(위이그리바)가 솟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곳은 남과 여의 마을 수호신을 상징 한다고 한다. 이곳 마을사람들이 아침부터 눈뜨면 항상 보이는 그 자리에 수호신처럼 우뚝 서있다. 수파이 마을을 둘러싼 돌산은 오랜 자연의 역사를 한눈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고 산자락을 바라보니, 영화에서 본 인디안 추장이 멀리서 지켜보는 것 같았다.
마을에 도착해서 저녁에 먹을 물이 필요해 마켓에 가보았다. 마켓에는 필요한 물품들은 대부분 물자가 부족해서 그런지 조금씩만 진열되어 있었는데 마을 밖 보다는 상당히 비싼 편이었고, 과일이나 야채는 조금 시들어 보였다. 살만한 물건들이 없어서 꼭 필요한 물품만 사들고 Lodge에 도착했다.
아직 저녁때가 아니라 시간이 남고 심심해서 Lodge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Lodge에 숙소는 대부분 관광객들로 모두 차 있는 듯 했는데 우리처럼 할 일없어 밖으로 나와 있는 가족들이 보였다. 캠핑그라운드에도 텐트가 많이 보였는데 이곳 Lodge에 숙박하는 사람들도 꽤 많아 보였다.
미국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비경을 찾아서 오지 중에 오지인 수파이 마을, 환경이 열악하고 불편한데도 어떻게들 알고 왔는지 곳곳에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수파이 마을로 내려오는 계곡을 장시간 걸어서 그런지 아직도 온몸과 다리가 아파서 움직이기조차 힘들었지만 Lodge를 벗어나 마을을 향하여 천천히걸어가 보았다.
마을에는 마켓뿐만 아니라 교회, 학교, 카페(간단한 음식과 스낵을 파는 식당으로 술은 팔지 않는다.), 병원, 관공서, 우체국 등 기본적인 것은 모두 갖추고 있었는데 극장이나, 술집, 샤핑 건물은 찾아볼 수 없고 모두가 조용한 삶을 사는 마을로 보였다.
650여명의 Havasuw Baaza(청록색 물의 사람들)라고 부르는 인디안 부족으로 구성된 Havasupai에는 현재 400여명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 인디언들은 그랜드캐년이 내셔널파크가 되기 전인 1890년에는 그랜드캐년 고원지대에서 사냥으로 살았는데 1882년 인디언 보호지역이 생기면서 연방정부에서는 수파이 부족에게 그랜드캐년 아래의 518에이커의 땅을 주었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의 삶의 터전의 90% 땅을 빼긴 결과가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경제적인 기반도 바뀌고 문화도 바뀌게 되었다.
조상대대로 사냥으로 살아온 인디언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주로 경작을 하거나 캐년 밖에 나가 일해서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1975년도 미연방정부는 18만5천 에이커에 달하는 땅을 다시 돌려주었는데 그 이후로 현재까지 그들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이용해서 관광으로 경제기반을 갖추며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주로 캠핑그라운드, 관광객 입장료, 카페, 라지, 스토어, 노새 운반 등으로 관광객들에게 받는 수입원으로 살고 있는데 부족해 보이는 환경에 비해 편안해보였고, 마을 안 카페나 마켓 등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은 주로 여자가 하고 노새 짐 운반, 캠핑그라운드 등 밖에서 하는 일들은 남자들이 하고 있었다.
수파이 부족은 주로 고유 언어인 Havasupai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들은 자기의 아름다운 땅에 자부심이 큰 종족이라고 한다.
수파이 마을에서 가장 현대적으로 지어진 학교는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유치원 과정부터 8학년까지 70여명의 학생이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는 주로 마을 밖으로 유학을 보내는데, 수파이 인디언 청년들은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일자리를 찾아 떠나지만 대부분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고 한다.
마을 주변을 돌면서 만난 수파이 부족들은 처음에는 관광객들에게는 무뚝뚝하게 보였는데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무척 순진하고 수줍음을 많이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모두가 조용하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조심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묻는 말에 대부분 천천히 조용히 그들 언어가 아닌 영어로 대답해주었다.
그들의 외모는 대부분 얼굴이 둥글고 몸이 통통한데 그곳에 있는 동안 날씬한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의 식습관 때문인 것 같다. 조상 때부터 사냥으로 먹고 산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지 지금 이곳 아이들은 캔디와 초코렛 등 단것만 항상 들고 다녔고 어른들은 물대신 콜라를 가지고 다녔다.
그들의 생활필수품들은 외부에서 조달한다고 한다.
수파이 부족이 인디언 마을에서 보호받고 사는 것 같지만 지금의 식습관이 되기까지 무분별한 외부 문화수용의 문제점을 보는듯해서 안타깝게 보였다.
저편에 불개미들이 꽤있는 흙에서 개들과 뒹굴며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 가 보았다. 아이들은 대부분 먼지로 더러워져 보였지만 천진난만한 눈망울은 맑고 깨끗해 보였다. 그곳의 길은 모두 비포장 길로 마차나 노새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가득했다.
흙은 매우 부드러워 어떤 아이들은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다니는데 아스팔트위에 아이들보다 자유스러워 보였다.
아이들 중 한 어린 아이가 말을 시켰다.
캔디에 포장을 뜯어달라고 수줍게 말했다. 얼굴색이 우리와 비슷해서 그런지 정감이 가는 거 보면 수파이 아이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다른 관광객들에게는 거의 말을 시키지 않았는데 우리에게 친근감을 나타냈다.
마을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과 만나면서 정이 들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다녀서 그런지 우리도 어느새 그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다시 Lodge에 돌아와 저녁을 차렸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조금씩 가져온 음식물을 아끼면서 먹으니까 꿀맛 같았다.
TV도 없고 전화도 잘 안되고 인터넷도 없는 이곳에서 많이 불편할 줄 알았는데 너무나 편하고 지낼만했다.
수파이의 밤하늘의 별은 너무 빛이 강하게 느껴져서 파란빛으로 보이기도 했다. 짙고 깊은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이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은하수도 보였다.
다음날 아침, 아쉬운 이곳을 떠나야할 시간이 되었다. 마을 카페에서 커피와 토스트를 주문했는데 무려 한 시간 반 만에 음식이 나왔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가 행동이 느리다. 아니면 우리가 너무 그동안 조급하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느린 수파이 사람들이 답답해 보이기도 했는데 그런 느림이 마을에 둘러싼 바위산들과 촛대 바위 그리고 한적한 풍경들과 함께 모두가 잘 어울려 보였다.
마을을 떠나기 위해 헬리콥터 타는 곳에 가 보았다. 관광객들은 사서 고생하면서 계곡을 걸어 다니지만 수파이 마을사람들은 말이나 헬리콥터를 이용한다고 한다.
작은 헬리콥터를 타고 Hilltop 주차장에서 마을 사이를 운항을 하는데 보통 일주일에 3일, 성수기에는 4일 운항하고 탑승인원은 조종사까지 여섯 명이다. 정해진 탑승 우선순위는 수파이 부족이 제일 먼저 탈 수 있고 다음은 응급환자, 연방공무원 그리고 관광객 순이다. 비행시간은 5-6분 정도이다. 마을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기 위한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인 헬리콥터를 기다리기 위해 마을 한 가운데 착지가 보이는 관공서 앞 건물아래에서 수파이 부족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다른 관광객들이 오니까 줄을 나누어 서게 했다. 수파이 부족이 우선권이 있어서 수파이 부족만 따로서고 관광객들은 옆줄로 갈라섰다. 비용을 지불하고 이름을 적은 후 기다렸는데 우리 차례가 오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서 마을 중앙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카페에 들어서니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가 무척 지쳐보였다. 아마도 새벽에 떠나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 같았다. 모두들 지쳐서 테이블에 업드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측은해 보이기도했다. 그 모습들이 남의일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우리도 도착해서 거의 파김치가 되었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기다리기 답답해 다시 헬리콥터 오는 곳으로 가 보았다. 이전보다 수파이 부족도 많이 보이고 관광객들도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순서대로 헬기에 타려면 이 많은 사람들 중 언제 탈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염없이 기다려야할 형편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저편에 흙먼지를 내면서 말과 노새무리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노새 등에는 우편물들이 들어있는 박스 꾸러미가 보였다. 수파이 마을은 아직도 미국에서 유일하게 우편물을 노새에 실어 배달하는 곳이라고 한다. 특이한 광경이라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또 한 차례 흙먼지가 나면서 노새 행렬들이 보였다. 그랜드캐년 계곡을 배낭을 매고 걷기 힘든 사람들이나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먼저 보낸 짐들을 가득 실은 행렬들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여러 차례 말과 노새 행렬들이 흙먼지를 내며 지나가니까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무도 항의하는 사람 없이 수파이 부족들은 한참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또 다시 흙먼지를 날리며 내리는 헬기에는 수파이 부족들이 밖에서 샤핑한 물건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샤핑한 물건들은 밖에서 흔한 피자, 도너츠 한 상자, 콜라 박스, 휴지 등이었는데 헬리콥터로 마켓을 보는 수파이 부족들의 생활이 이채로워 보였다.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 중 도시로 유학 간 자녀를 반갑게 맞이하는 부모들도 보였는데 수파이 마을에 내린 자녀는 도시물이 들어 조금 세련된 차림으로 부모를 맞이했다. 때때옷을 입고 도시로 나가는 수파이 사람들의 만남과 떠남이 교차된 헬리콥터 타는 장소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관광객인 우리 차례가 되려면 아직 먼 듯했다.
헬기는 20분 간격으로 오긴 하지만 여러 번 오고간 헬기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수파이 부족이 많아 관광객 순서는 아예 오지 않았다. 참다못해 한 관광객이 조용히 헬기 관계자에게 다가가서 요청했다.
수파이 부족이 우선권이 있는 줄 알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는 관광객을 위해 다음 순서부터는 수파이 부족과 함께 섞어 타면 어떨까 하고 요청했다.
헬기 관계자는 공평성 있다고 판단했는지 요청을 수락해주었다. 관광객들이 드디어 헬기에 두 명씩 오르게 되었고 우리 순서도 곧 다가올 것 같았다.
수파이 부족들은 아무도 그에 대해 항변하지 않고 묵묵히 관계자의 뜻에 따랐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멀리서 헬기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동안 왠지 수파이 마을을 떠나는데 서운함이 엄습해왔다. 헬기에 올라 수파이 마을이 점점 작아지면서 힘들여 걸어 내려간 협곡 아래 풍경이 아름답게 보였다. 노새를 이끌고 가는 말을 탄 수파이 부족도 개미 만하게 보였다.
2박 3일 동안 잠시 머물렀던 수파이 마을에서의 시간들이 너무나 아쉬웠고 평화스런 마을과 폭포, 수파이 사람들, 아이들, 개와 말, 노새들…마치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을 찍고 온 듯 한 수파이 마을에서의 추억을 다시 회상해본다. 요즘은 저절로 입에서 감사가 튀어나오는 그런 시절을 지내는것 같다.
수파이 마을에 다녀온 후, 그곳에서 겪은 부족함속에서 느낀 감사를 다시 떠올리며, 풍요 속에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감사의 향기도 함께 진하게 풍겨났으면 좋겠다. – The End –
글 : 유니스 홍, 사진: 브라이언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