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만한곳 The Wave

The Wave

매거진 제작의 한 부분이 된 가볼만한 곳 여행지중 ‘웨이브’처럼 강한 기억을 남기는 곳이 없었는데 그래서 인지 웨이브를 다녀온 후 다시 가고픈 마음이 웨이브에 중독되었다는 표현이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웨이브에 다녀온 후에도 며칠간 웨이브 사진을 자주 들어다 보면서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였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편안하고 럭셔리한 여행보단 사서 고생한다는 말처럼 그야말로 고생스런 여행을 즐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유명한 관광지 보다는 험한 오지를 탐험하듯 직접 체험하는 여행이 깊이 남는다.
웨이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특별한 곳이다. 길도 없고 이정표도 없는 산길을 넘는 조금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입견처럼 특별한 사람만 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다녀와서 느꼈다.
노인 그룹과 초등학교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나를 비롯해서 모두가 전문가는 아닌 것을 보면 보통 사람들도 갈 수 있다는 곳인 것 같다.
가기 힘든 웨이브를 사진으로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매거진에 화보로 보여주고 언젠가 웨이브를 도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곳, 웨이브를 밸리매거진 가볼만한 곳에 소개한다.


웨이브를 도전한 사람들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웨이브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죽기 전에 가볼만한 곳 중 하나라고 다녀온 사람에게 전해 들었다.
‘웨이브’의 사암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에 10명을 추첨하고 10명은 3개월 전에 예약해서 하루에 20명만 웨이브에 들여보낸 다는 말을 듣고, 떠나기 전부터 거의 기대를 갖지 않았다.
매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웨이브를 보려고 오는데 평소 30명에서 150여명까지 추첨을 기다린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운이 나쁘면 시험에 낙방하듯 여러 번 도전 했는데도 10명만 뽑는 추첨에 한 번도 뽑히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3개월 전에 하는 예약은 매달 1일에 인터넷과 전화로 받아서 추첨하는데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 경쟁률이 더 높다고 한다.
추첨 장소에 가기 위해 유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부터 잠을 설쳐 가며 추첨 장소에 남들보다 일찍 도착했다. 요행을 바라고 무작정 떠났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추첨하는 곳에서 알 수 있었다.
주말 혼잡을 피해 주중을 선택했는데도 이미 40명이 넘었다. 바로 서류 작업 후 정확히 9시에 추첨이 시작됐다. 추첨 방식은 재미있게 Lottery 게임처럼 번호가 있는 공을 돌려 하나씩 뽑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에 각각 4명씩 8명이나 뽑혔다. 거의 희망이 없는 마지막 2명을 뽑는데, 믿기지 않게 우리 번호를 불렀다. ‘넘버 식스!’ 하고 우리 번호가 들려왔다. 남편이 사전에 뽑히지 못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너무 좋아하는 내색을 삼가라고 주위를 주는 바람에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기쁨을 억누르는데, 남편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펄쩍 뛰면서 앞으로 나갔다. 나는 쿨~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밖으로 나왔지만, 나오자마자 함성을 질렀다. 우와~ 우리가 뽑히다니… 정말 날라 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도 넘버 식스가 나의 행운의 번호로 남아 있다. 남아있던 사람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하나 둘씩 사라지고 우리는 지도 한 장과 퍼밋 티켓을 받고 그곳을 나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웨이브로 출발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위해 다시 작년 여름 다녀온 앤텔롭 캐년 근처 페이지에서 비상식량과 물, 필요한 물품을 준비했다. 남편이 추첨 장소에서 준, 토포그래프 지도를 꼼꼼히 점검했다. 웨이브는 지도만 보고 가기 애매한 곳이다. 트래일이 분명하지 않아서 사암으로 된 비슷비슷한 바위를 GPS에 의존하여 가야한다. 이번 여행을 위해 특별히 거금을 주고 산 GPS는 전문 산악인이 보는 보통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조금 복잡한 GPS인 것 같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마치 소풍을 떠나는 전날 밤처럼 마음이 설래 잠이 잘 안 왔지만 우리에게 행운을 안겨준, 웨이브 도전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다음날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했다.
드디어 웨이브로 향하는 아침이 되었다. 이른 아침 식사를 든든히 하고 혹시 조난당할 수 있다는 대비책으로 물 2갤런을 배낭에 넣고 비상식량과 손전등, 옷가지 등을 챙겨 비장한(?) 마음으로 웨이브로 향했다.
비포장도로를 먼지를 날리며 30분 정도 가다가 웨이브 입구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아무 이정표 없는 산길을 불안한 마음으로 걸어 들어갔다.
간간히 바람소리만 들릴 뿐 너무 적막했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뒤를 돌아보니 오던 길도 잘 보이지 않았다.
GPS로 목적지를 잡아 보는데 복잡한 GPS보다는 어제 받은 지도에 산 풍경을 코스별로 잘 정리한 사진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한참을 가도 울퉁불퉁한 애리조나의 사막과 산의 풍경만 보이고 웨이브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나타나지 않아서,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 아닌지 주위를 살펴보아도 삭막한 바위와 돌뿐이었다.


남편에게 내색은 하진 않았지만 추첨된 기쁨은 점점 사라지고 험난한 사막 길을 힘들게 가는 길을 걷는 발걸음처럼 마음만 무거웠다.
2시간 넘게 걷고 또 걷고 그러다가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진한 코발트색 하늘을 보고 바위에 앉아 잠시 쉬어 갔다.
다른 곳에서 보았던 하늘과 비교될 수 없이 깊고 맑은 하늘이 태고 이전의 지구의 하늘이 그럴 것 같았다.
자료에는 이곳에서 공룡 발자국도 볼 수 있고 화석도 보인다고 하는데 아직 눈에 띄지는 않았다.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를 하고 기대를 하면서 와서 그런지 아직 보이지 않은 웨이브가 영영 나오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다시 지도를 살펴보다가 산 하나만 넘으면 웨이브가 나온다고 한다. 한참을 오다보니까 벌써 산을 두 곳을 넘은 것 같다. 산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웨이브를 가는 길이 사막 모래 길을 걷기 때문에 힘이 많이 들고 멀게만 느껴졌다. 세 번째 산을 넘는데 저 멀리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웨이브를 들어서는 길목인가 싶은 사암이 보였다. 오랜 세월 동안 비와 바람으로 스쳐지나간 모래 바위의 단층이 그대로 차곡차곡 쌓인 모습이 바위의 나이테 같이 보이기도 했다. 마치 신기루를 발견한 것처럼 빠른 걸음으로 가까이 가 보았다. 웨이브의 풍경이 비춰지는 고인 물에 작은 물고기가 꼬물꼬물 움직이고 아이들이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었다.
생명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웨이브에 인간과 자연의 만남이 너무나 인상적 이었다. 남편은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고 나는 아름다운 웨이브의 풍경을 마음속으로 각인시켰다.
예술의 극치라고 표현하고 싶다. 모래로 된 사암이 너무 아름다워 가까이 바위를 어루만지면서 느껴보고 싶었다. 조금만 발을 내딛어도, 손으로 만지면 부서지는 사암을 더 이상 회손 시키고 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발을 내 딛고 천천히 구경했다.
도대체 어떤 곳이 길래 추첨까지 하면서 하루에 20명만 들여보내는지 궁금했었는데 이곳에서 웨이브를 만나고 느끼면서 알게 되었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웨이브가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길 우려해 이곳을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 같기도 했다.
저편에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산을 구경하고 있고 웨이브를 배경으로 아이들과 아내의 사진을 찍어주는 멋진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가 전문 산악인도 아닌데 비교적 험난하고 조금 위험한 웨이브를 찾아 온 것을 보면 웨이브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곳 같다. 하지만 이곳에 온 추첨된 20명의 사람들이 더욱 특별해 보이고 선택 받은 사람들 같다. 그 20명 중에 우리 부부가 함께 한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웨이브 곳곳은 보는 곳마다 신기하고 몇 억 년 세월을 한 순간에 다 보는 느낌을 받는다. 이 지역의 이름은 원래 North Coyote Buttes인데 웨이브를 발견한 사람들이 가칭으로 이곳과 어울리는 명칭을 부르다 보니까 웨이브로 알려졌다고 한다.
웨이브에 빠져 구경하고 있는데 남편이 다시 돌아가자고 했다. 아직 해가지지 않았는데 재촉하는 남편을 원망(?)하며 웨이브를 뒤로 하고 가야만 했다. 자꾸 뒤를 돌아보며 웨이브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나에게 남편은 다시 돌아가야 할 길이 멀고 돌아가는 길을 제대로 찾아야 하기 때문에 돌아가는 시간을 넉넉히 잡았다고 한다.
웨이브에 도취되어 구경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웨이브를 벗어나자 이제야 정신이 돌아 온 것 같았다.
돌아 나오는 길이 오던 길과 전혀 다른 곳처럼 보였다. 우리는 조금 당황하기 시작했다.
방향감각도 잃었을 뿐만 아니라 표시된 길도 없이 거꾸로 오는 길은 지도에 사진으로 나타나 있지 않았다. 침착하게 남편은 GPS로 위도와 경도를 살펴보고 천천히 오던 길을 돌아보았다.
조난에 대비해 준비는 많이 해왔지만 막상 조난당할까봐 두려워하는 나를 억지로 안심시키는 남편이 더욱 불안해 보였다. 한참을 가는데 길을 잘 못 들어선 것을 알게 되었다. 길도 없고 어디를 둘러봐도 비슷비슷한 풍경이 방향감각을 잃게 하는 것 같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무사히 올까하는 의문이 가기도 했다.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이 웨이브를 찾는다는 것이 무모하게도 느껴졌다. 불안한 걸음을 걷고 있는데 모래위의 발자국이 보였다.
발자국을 따라가면 되겠지 하고 가는데 길이 점점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을 느꼈다. 그 발자국들도 길을 잘못들은 사람들의 발자국인 것이다.
점점 당황이 되는데 저 멀리 오던 길에서 보았던 물이 마른 계곡이 보였다. 그 계곡을 건너니까 오던 길과 비슷한 길이 나오기 시작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그곳을 지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산을 너무 일찍 넘어서 길을 잃은 것이다. 힘이 거의 다 빠질 무렵 저 멀리 파킹장이 보이기 시작해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길을 헤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일찍 서둘러 웨이브를 벗어나길 다행이라고 했다.
살아가면서 힘들고 위기의 상황이 있을 때마다 남편이 자상하게 나를 설득시킨 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위기를 극복할 때가 있었는데 웨이브에서도 남편은 나의 현명한 동반자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쉽지 않지만 깊은 감동을 남겨준 웨이브를 방문한 김에 다음날 유타 Kanab에서 가까운 곳에 공룡 발자국을 볼 수 있다는 동굴을 방문했다.
입구에 친절한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는데, 놀랍게도 영어로 말하는 단어 중 한국말로 ‘부모’, ‘가족’, ‘조상’,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등의 단어를 말했다. 이 동굴을 발견한 아버지는 영국 사람으로 젊었을 때 피츠버그 스틸러스 풋볼선수였는데 부모님이 이곳의 동굴을 발견하고 공룡 발자국과 화석 등을 수집해서 이곳에 전시하고 사람들에게 공개했다고 한다. 오래된 가족사를 들려주면서 흥미로운 화석이야기, 공룡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굴 깊숙이에는 인공으로 만든 것 같이 착각이 드는 발견된 희귀한 야광석들을 전시해 놓았다. 동굴 안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면서 이곳을 매거진에 소개하겠다고 전하니까 더욱 적극적으로 이곳을 설명해 주었다. 이곳에 다시 오면 근방에 멋있는 곳을 더 많이 알려 주겠다고 했다.
웨이브근방의 숨겨진 보석 같은 아름다운 곳을 갈 곳이 더 많아졌다. 조금 남은 시간에 Coral Pink Sand Dunes 이라는 곳도 들렀다.
사막 숲 산길 한 가운데에 바람으로 형성된 모래 언덕이 있는데 이름 그대로 산호색과 핑크빛이 도는 고운 모래 언덕으로 삭막한 모래 언덕 같지 않게 보였다.
바람결 웨이브가 지어있는 모래언덕위에 올라가 보았다. 그곳에는 모래 언덕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이곳 분위기와 조화롭지 않게 보이는 바비큐 시설이 있는 부스도 있지만 저 멀리 산호 핑크빛 모래 언덕이 낭만적으로 보였다.
사진작품전에서 사막을 찍은 사진이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 아닐까 상상하는데 남편이 모래언덕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모래 언덕의 능선을 바라 보니까 어제 본 웨이브가 다시 그리워졌다.
애리조나와 유타 인근에서 하루를 쉬엄쉬엄 보내고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지는 해처럼 하루를 또 그렇게 보냈다.
웨이브에서의 시간을 보내며 아쉬움이 더 많았지만 다가올 시간이 희망으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평강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했다.
글 : 유니스 홍, 사진 : 브라이언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