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만한곳 KOREA: 헤이리 진관사 산정호수

KOREA: 헤이리 진관사 산정호수

모국방문 성수기가 지나서 항공권이 이전 보다 조금 저렴한 편이 되었고 팬데믹 동안 억눌렸던 기간도 풀리고 격리해제까지 더해 한국방문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리운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설레는 마음은 오랜 비행시간이 전혀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려앉았고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고국의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조금은 습했지만 설레는 고향의 냄새, 세월은 흘렀지만 마음이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던 고국의 모습이 감싸 안듯 아늑하게 느껴졌다.
2019년 이맘때 무슨 예감이라도 한 듯 지금 못가면 안 될 것 같아서 한국을 다녀왔었다. 그 이후에 다시 갈 계획을 했었는데 팬데믹을 만나고 이런 저런 이유로 한 동안 그리움 속에서 기다림으로 세월을 보냈었다.
예전처럼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마중 나온 동생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친정집으로 향하는 차창 밖에는 빗물이 눈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애써 안 그런 척 눈물을 훔치고 엄마를 만나서 더 밝게 엄마 품에 안겼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왜소해지시고 힘이 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왔다.
세월 앞에서 모두가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가족사랑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오랜만의 방문으로 미리 일정을 짜서 알찬 여행을 하려고 SNS나 유투브에서 보고 맛 집과 볼거리를 입력해두었지만 모두 섭렵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주로 친정 엄마 집 인근에서 비교적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가볼 만한 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친정집은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 같았지만 아버지가 가꾸어 놓으신 정원의 나무들이 몇 년 사이에 많이 자라있었다. 엄마가 정성껏 차려주신 따뜻한 밥상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아버지 산소에 잠시 들렀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어디선가 까치 소리가 반갑게 들려왔고 천국에서 미소 지으며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 산소에 잠시 머물렀다가 해산물 시장에서 싱싱한 제철 해산물을 사와서 저녁에 온 가족이 둘러 않아 먹으면서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음날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났는데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와 음식을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친정집은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곳이라 그런지 잠도 푹 자고 음식도 맛있었다.
빠듯한 일정인데 언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친정집 근처로 일정을 잡아서 친구들과 파주인근 가볼만한 곳 헤이리에 들러 샤핑도 하고 카페에서 끊이지 않는 이야기도 나누고 다음날은 친구 집 인근에 진관사라는 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한국에 가면 가족들과 상봉하는 것도 좋지만 역시 어린 시절 친구들을 만나는 것 또한 기쁨으로 가득했다. 친구들과 서로 얼싸안으며 마치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 나온 장면 비슷한 멘트를 써가며 너무나 반가워했다. 파주 프로방스라는 곳과 헤이리는 유투브에서 젊은 유투버들이 예쁜 포토 존을 소개하는 영상으로 보았는데 세월이 많이 흘러 나이는 들었지만 예쁘게 차려입고 친구와 추억이 될 수 있는 사진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 다음날 찾은 진관사라는 곳은 한옥마을로 유명하다고 했는데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사찰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다.
진관사(津寬寺)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 소재한 사찰인데 고려 현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진관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은 절이라고 한다.
진관사입구 인근에 있는 한옥 마을은 핫 플레이스로 알려진 곳으로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지만 마을을 배경으로 한 북한산 자락이 아름다웠다.
한옥마을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적했는데 한옥마을을 따라 올라가니 커다란 돌에 ‘진관사’라고 글자가 보였다.
친구와 추억을 만들기 좋은 사진을 담기에 너무나 좋은 풍경이 보였는데 계곡에 물이 별로 흐르지 않았지만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이 아름다운 광경으로 펼쳐져 있었고 둘레 길로 가는 길을 산책하듯이 조금 걸어보았다.
친구와 이런 저런 옛 이야기를 나누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평화스런 길을 걷은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그림을 그리는 친구는 아직도 감성이 풍부해서 물이 흐르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수채화로 그리고 싶은 풍경이라 말하며 맑은 계곡물을 감상했다. 얼마간 길을 오르다 보니 대웅전이 보였는데 생각보다 아담했다. 불교인이 아니지만 친구와 함께 방문한 진관사에 머무는 시간이 편안하기만 했다. 사찰에서의 시간은 세상속이 아니라 산 속에 있어서 자연과 함께 있는 시간이 세상일들에서 잠시나마 벗어난듯했다.
진관사는 백월초 스님과 태극기로 유명한 의미 있는 역사의 현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오래된 태극기와 독립신문 등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진관사 태극기는 일제 강점기 중 사찰에서 처음 발견된 것으로 독립 의지를 담아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덧그리는 식으로 개조한 것으로 친구와 함께 방문한 역사의 현장에 오니 느낌이 새로웠다.
진관사를 돌아보며 그곳에 찾아온 가을을 느끼며 내려오는 길에 카페가 보여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진관사에는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초가지붕 위로 멋진 소나무들이 주변풍경을 아름답게 더해주었다.
카페에서 창밖 풍경을 내다보며 팥빙수와 팥죽을 먹고 있었는데 옆에서 차를 마셨던 다른 일행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함께 찍은 사진도 남기고 가을의 정서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진관사 카페에 친구와 머물렀던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그곳에서 머물러 있으니까 시를 쓰거나 수채화를 그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시간이 흘러 푸른 하늘이 노을로 변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내려오다 한옥마을의 문학관에 잠시 들렀는데 그곳에도 장독대가 있어서 향수를 자극하는 듯 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가 정겨운 풍경으로 남아 잠시 바라보고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동생이 시간을 내서 친구와 함께한 시간도 추억에 남는다. 동생 일행과 함께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른 아침부터 출발해서 포천 방향으로 가는 길이 한적하고 아름다웠다.
요즘 한국은 곳곳에 볼거리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하지만 주말이 끼면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그래서 동생이 이른 아침 출발해서 사람이 덜 붐비는 코스로 여행일정을 계획했다고 했다. 그날따라 가을비가 촉촉이 내렸는데 안개 낀 산길이 나름대로 분위기 있어 좋았다. 도착한 곳은 산정 호수인데 비가 내려서 우산을 쓰고 호수가 둘레 길을 걸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방문했던 것 같았는데 호수 말고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전혀 새로운 곳에 방문한 것 같았다.
산정호수는 포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국민관광지’라고 한다. 아름다운 산정호수뿐 아니라 가을철 억새로 장관을 이루는 산과 주변의 작은 산봉우리들이 호수와 어울려 절경을 이루기 때문이다.
호수를 한 바퀴 감싸고 있는 산정호수 둘레 길은 걷는 내내 호수가 시선에서 사라지지 않아 산정호수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이름도 예쁜 산정호수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문득 국민관광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산정호수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검색해 보니까 산정호수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5년 영농조합의 관개용 저수지로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축조된 것이 바로 산정호수인데 ‘산 속에 있는 우물’이란 뜻으로 산정호수라는 이름이 붙었고, 산 안에 있다 하여 ‘산안저수지’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상상해 보니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우물 같은 저수지였으니 그 풍광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지 않았을까 싶었다. 산정호수는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면서 끊임없이 변화했는데 호수와 주변 산세가 빚어내는 풍경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다운 것은 호수와 산은 옛 모습 그대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일 것 같다. 마치 물 위를 걷는 듯 호수 위에 떠 있는 길이다. 수변 데크를 걷던 사람들이 곳곳에 놓인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머무름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눈으로 보고 마음에 새겨 더 오래 기억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인지 걷는 시간보다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아졌던 것 같았다. 수변 데크로 내려가는 길에서 산정호수와 저편에 보이는 산의 자태가 가장 아름답게 빛났다. 그리고 수변 데크 끝자락에 있는 광장도 호수 풍광을 가장 아름답게 담을 수 있는 곳이었다. 둘레 길은 다시 오붓한 숲길로 이어졌다. 우산을 쓰고 빗소리를 느끼며 둘레 길을 3분의 1쯤 걸었다. 산정호수로 던져둔 시선을 차마 거두기가 아쉽게 느꼈다. 수변 데크를 뒤로하고 숲길로 접어드는 발길이 마치 마지못해 떠밀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숲길은 그 나름대로 또 다른 풍경을 선사했다. 숲 사이로 펼쳐지는 호수가 신선했는데 제법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들 사이로 폭신폭신한 오솔길이 이어졌는데 호수 한가운데 떠다니는 작은 배가 한가롭게 지나갔다.
잔잔한 호반을 따라 걷는 산책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산정호수에는 호수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산책뿐 아니라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수변 데크길, 송림이 울창한 숲길, 붉은빛 적송 아래 조성된 수변 데크, 조각공원 등 평탄한 길로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곳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걷고 또 걸었다. 산정호수 둘레 길은 잔잔한 호반처럼 여유 있고 정겨운 길로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가을 끝자락, 바람불고 비오는 날 호수가 주는 분위기 때문인지 비 내리는 산정호수 둘레길이 정말 좋았다. 산정호수를 배경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는데 지역 사진 작가협회에서 무료로 사진을 찍어 준다고 했다. 그곳에서 우리도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정말 잘했어 산정호수 오길’라는 문구가 세워진 조형물 앞 의자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모두가 즐거워했다.
둘레 길을 벗어나 요즘 핫 플레이스라며 친구가 알려준 카페에서 원두로 만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함께 미국보다 더 이국적인 카페에 커다란 창가에 앉아 내리는 가을비를 바라보며 가을 끝자락 짧은 여행이었지만 긴 이야기가 담긴 추억 여행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