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지금까지 헛 살았어’(글렌데일 그레이스 교회 담임목사 정광욱, 323-228-5220)

‘지금까지 헛 살았어’(글렌데일 그레이스 교회 담임목사 정광욱, 323-228-5220)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럽을 여행하던 중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 후 20년을 병석에 누워 지내게 됩니다. 혼자서 손 하나 발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무료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지냅니다. 창 너머로 펼쳐지는 세상은 손을 내밀어도 닿지 않고, 소리 질러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다른 차원의 세계이었습니다. ‘세상이 나를 버렸어, 나는 이제 쓸모가 없어졌어.’하는 느낌 뿐 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달팽이 한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왜 이런 쓸데없는 것을 가져왔느냐’는 핀잔에,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숲에서 주워왔어’ 했습니다. 그러다 베일리는 달팽이에 대한 왠지 모를 친밀감이 느껴지고 달팽이가 궁금해졌습니다. 달팽이에 관해서 관찰하고 연구한 것들을 메모로 적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제비꽃 화분 받침에다 시든 꽃 몇 송이를 얹어놓았다. 달팽이가 잠에서 깼다. 화분 벽면을 따라 아래로 내려와서는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시든 꽃들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리고 꽃 한 송이를 먹기 시작했다. 먹는 건지 안 먹는 건지 모르는 속도로 꽃잎 하나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귀를 바싹 기울였다. 달팽이가 먹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가 셀러리를 매우 잘게 끊임없이 씹어 먹을 때 나는 아주 작은 소리였다. 나는 달팽이가 보라색 꽃잎 하나를 저녁밥으로 꼼꼼히 다 먹어 치우는 한 시간 동안,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달팽이가 먹으면서 내는 아주 작고 정겨운 소리는 내게 특별한 동무와 공간을 함께 쓰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
베일리는 1년 동안 달팽이를 관찰했습니다. 놀랍게도 건강도 조금씩 회복되어 마침내 요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1년 동안 달팽이와 함께 했고, 달팽이의 삶을 통해 서서히 회복되는 자신을 느꼈다. 지난해에는 이 험난한 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달팽이와 그 녀석이 낳은 새끼 달팽이가 문득 내 앞에 나타났다. 나와 다른 생명체를 관찰하는 것은 바로 내 삶을 돌보는 것이었다.’ 병에서 회복된 베일리는 차가운 첫 봄비가 내리고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달팽이를 풀어주러 숲으로 갑니다. 그리고 1년 동안 달팽이를 지켜보며 써 내려간 메모와 자료를 모아 책으로 냈습니다.
우리가 외롭고 불행하게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나 자신을 너무 많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먹어도, 마셔도, 쇼핑을 해도 나만 생각합니다. 나를 생각하는 것이 정말 보람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내가 하지 못하는 것, 내게 없는 것이 점점 더 많이 보입니다. ‘지금까지 난 헛 살았어.’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럴 때 옆을 돌아보면 새로운 생명체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스스로 회복되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정광욱 목사